한국에서 사람들이 내게 좋아하는 장소를 물으면 제주 세화해변, 용산 가족공원 그리고 합정 종이잡지클럽을 꼽고는 했다. 그중에 종이잡지클럽은 한창 영감을 찾아다니던 대학생 시절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방문하게 된 곳인데,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큰 창을 통해 다양한 취향의 잡지로 가득한 공간을 보면서 마치 숨겨진 보물 장소를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첫 방문이라는 말에 내게 종이를 건네며 간단하게 나의 취향에 대해 파악하시고 나서 내가 쭉 둘러보는 동안 내가 좋아할 만한 잡지를 골라 추천해 주셨는데 사실 정확하게 어떤 잡지였는지, 그중에 어떤 기사였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어떤 인터뷰에서 인터뷰이의 말 한 문장이 뇌리에 박혀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떠올리곤 한다. 그 문장은 바로 ‘There is no magic solution in life’ 다.
얼마 전 뉴질랜드에서 적은 일기를 쭉 다시 읽어보면서 ‘세상이 진짜 넓다. 이렇게 넓어진 세상을 다시 좁히고 싶지 않다.’ 라고 밑줄까지 쫙 그어서 써둔 걸 발견했다. 오클랜드에서 타우랑가로 넘어오고 나서 조금 더 여행자가 아닌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갈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내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전부가 아니고, 무수한 다양성과 가능성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강하게 느꼈던 날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가끔씩 그 사실을 잊는다. 예를 들면 ‘이곳이 아니면 안 돼’,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돼’, ‘이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안 돼’, ‘이걸 해내지 않으면 안 돼’와 같이 어떤 가능성을 한 가지에 가두는 생각들. 낮잠 한번 푹 자고 일어나서 다시 생각해 보면 사실 ‘이곳에서 일하면 이런 게 좋을 수도 있지’, ‘이 사람과는 이런 면이 잘 맞을 수도 있지’, ‘이 방법으로 되면 편할 순 있지’, ‘이걸 지금 해내면 더 좋긴 하지’ 처럼 한때 내가 간절하고 절박하게 여겼던 그것들도 여러 가능성 중에 하나에 불과한데 말이다. 넓어진 세상으로 나온 만큼 이곳에서 새롭게 다시 뿌리를 내려야 하는 입장이 된 요즘, 전자와 같은 생각에 자주 빠지곤 하는데 그 이유를 생각 해보면 그 끝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인 불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는 무한함 앞에서 가장 최선의 것을 고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된 것이 내가 고른 이것이 최선이어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지나치게 커졌을 때, 나는 내가 너무 절박한 상태가 되었음을 느낀다.
문제는 그냥 절박한 게 아니라, 너무 절박해졌을 때 발생한다. 그 상태가 되면 인생에 매직 솔루션이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그것일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모든 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변하기 마련이고, 내가 쥐고 있다고 생각한 키도 사실은 다른 사람의 손에 있을 수도, 내가 ‘매직 솔루션’이라 여겼던 동아줄이 끊어졌을 때 절망하다가도 알고 보니 떨어진 그곳이 지름길이라는 걸 깨닫게 될 수도, 이 역시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너무 절박해지는 마음 상태를 경계하려고, 최대한 내려놓으려고 하고 있다. 한 가지의 답이 없다고 해서 어떤 답도 내리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매 순간 크고 작은 결정을 하고 이 결정이 옳기를 바라며 살아가긴 하지만 만약에 이게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그러면 다른 걸로 가면 된다 하는 마음으로. 그게 바로 이 넓은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태도이지 않을까 싶다. Move 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