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 삶의 방향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때 큰 도움이 된 시구절이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 것”. 삶에 있어 "무언가를 하는 것"은 순간적인 호기심이나 도파민 등의 자극 덕분에 나를 움직일 수 있지만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은 유혹의 순간들을 참고 이겨내는 것이라 정말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향에 대해 확신으로 의지를 다잡아 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구절에 대한 생각을 담은 일기의 끝에는 소연이가 있었다.
소연이는 정식 대학생이 되기도 전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고 나와 비슷한 게 많아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20대 초반의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광대라고 칭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또 사랑을 받는 것이 삶에 중요한 부분이었다. "나"보다는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게 많다 보니 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힘들 때면 서로의 자취방에서 같이 누워 밤새 떠들다가 잠이 들곤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일을 하면서 만남의 횟수와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서로의 방향을 찾아가며 우리는 커갔다. 가끔 마주친 소연이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꾸준히 지키며 뿌리를 단단히 하고, 그 안에 본인에게 활력을 줄 수 있는 “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시간이 조금 걸려도 해내 꽃을 피워 본인 만의 나무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마주친 소연이의 나무는 튼튼한 뿌리 덕분에 무럭무럭 자라 지친 사람들이 가끔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이 되어주었고, 활짝 핀 꽃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씨앗이 되기도 했다. 말로 내뱉은 것에 대해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동안 힘들어 잠시 주춤하는 것 같아도 금방 스스로를 다독이며 일어서는 방법을 알고 실천하는 존경스러운 친구이다. 처음 우리 계획이 바뀌어 이력서를 뿌리고 다닐 때 도, 너무나도 변화무쌍한 커피 주문을 받을 때도 소연이는 본인이 할 수 있는 환한 미소 이겨내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힘이 있는 사람. “나이가 들었을 때 만들어진 주름이 그 사람을 삶을 보여주는 것 같다"라며 나이가 들었을 때 미소가 만들어낸 주름을 갖고 싶다던 소연이에게 가장 어울리는 노래를 추천한다.
그늘은 사람들을 억지로 붙잡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있으면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간다. 가끔 본인은 인복이 많은 것 같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지금까지 소연이가 인생에 대한 방향, 가치 등을 고민하며 만들어진 나무 그늘을 알아본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이 준 물과 영양분으로 본인만의 나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소연이가 직접 마주칠 수 없지만 나를 통해서, 또 소연이를 사랑하는 많을 사람들을 통해서 소연이의 나무가 얼마다 아름다운지 만날 수 있길 바라며…
Have a nice day Put a smile on your face Don’t forget to remember You’ve got what it takes
누군가 내게 주영이가 어떤 사람인지 사진으로 보여줄 수 있는지 묻는다면 나는 대학 동기들과 떠난 도쿄 여행 중 찍은 사진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다. 당시 아무도 일본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주영이가 자연스럽게 우리의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사진 속 주영의 뒷모습은 한 버스 터미널에서 우리가 타야 할 버스의 정류장을 찾지 못하고 헤멜 때 찍힌 건데 우왕좌왕하고 있는 우리를 잠시 두고 정류장의 끄트머리에 서계셨던 기사님에게 다가가 길을 물어봐 주는 주영이가 아주 든든했고, 또 왠지 모르게 ‘저 모습이 정말 주영이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우리뿐만 아니라 주영이도 이리저리 치이는 바쁜 회사 중에 짬을 내어 여행을 떠나온 상황이었던 만큼 쉬고 싶은 마음이 컸을 텐데 기꺼이 우리를 위해서 나서주었던 주영이에게, 그리고 일본어라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도움을 받은 다음에 밝은 얼굴로 고마움을 전하는 것 같았던 주영이에게 큰 고마움과 한편으로는 항상 이 친구로부터 닮고 배우고 싶었던 모습을 이 사소한 순간에서 마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에세이의 주제로 서로에 대해서 쓰기로 한 뒤에 어떤 식으로 글을 풀어가볼까 고민하던 중, 주영이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던 친구에게 그녀의 인상이 어땠는지 물어봤다. 많은 대화를 나눠본 게 아니라 아직 잘은 모르지만 딱 마주쳤을 때 드러나는 웃는 얼굴에 밝은 에너지 외에도 그 뒤에 진지한 모습이 있을 것 같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크게 맞장구를 쳤는데 그게 내가 느끼는 주영이의 모습이기도 해서 그랬다. 조금 덧붙이자면 그 진지함에는 사람에 대한 섬세함과 해내야 하는 몫에 대한 책임감이 담겨있다. 일과 연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운동까지 챙기면서 하루하루가 바쁠 텐데 그 와중에 함께 사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면서 다 같이 모여 만두를 만드는 저녁시간을 먼저 제안하는 주영이의 따뜻한 마음이, 뉴질랜드에 와서 초기 정착 중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혔을 때 한 번씩 내가 감정에 휩쓸리는 상태가 되어도 옆에서 차분하게 이것저것 따져보면서 우리가 괜찮은 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버텨준 든든함이, 가끔씩 늦은 밤 퇴근 후에 침대에 누워서 나누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에 담긴 여러 가지 고민들이 그저 주영이를 넉살 좋고 재밌는 사람으로만이 아닌 그 안에 깊은 속을 가진 사람으로 느껴지게 한다.
지난 레터에서 주영은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배려를 택한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본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배려를 선택하는 이 사람이 얼마나 다정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위해서 칼도 뽑아들고, 벼랑 끝에서 밀어버리기도 하는 이 세상에서 주영이가 뽑아든 배려라는 방법은 그 이유가 어떻다고 해도 참으로 따뜻하다. 그래서 나는 이 깊고 환한 다정함이 오래오래 지속될 수 있는, 그 마음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고 배려 받을 수 있는 인연이 주영의 삶 속에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주영이에게는 유쾌하고 밝은 얼굴 외에도 기꺼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나서는 뒷모습도, 이 순간에 아이가 행복한지 살피는 애정 어린 눈빛도, 주어진 몫과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진중한 표정도 여러 가지 모습이 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곁에서 주영이가 때로는 웃는 얼굴이 아니더라도 안온하게 쉬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