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있으면서 나는 ‘다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나의 삶에 대한 다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거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데에 푹 빠진 아이의 다음, 날 좋은 주말에 해변가에 놀러 나온 어린아이를 둔 어떤 가족의 다음, 웅장한 고목들 사이에 심어진 작고 어린 나무의 다음, 어느 것에도 묶이지 않은 채 코의 본능이 향하는 대로 뛰어다니는 개와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가는 주인의 다음. 현재에 집중해서 살아가는 게 좋다고 하지만 때론 너무 지금만을 생각하다가 놓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앞으로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그를 위한 현재에 가져야 하는 마음, 또 취해야 하는 태도. 얼마 전에는 친구랑 공원에서 얘기를 하다가 대화가 깊어지게 되면서 한때 살아가는 것에 대해 어떤 기대감도 없었던 시기의 이야기를 꺼내놓게 되었다.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계속해서, 미미하게 축적되는 부담과 불안에 이렇게 쌓여가는 것이 삶이라면 더 이상 살아가는 게 고통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냐며 자주 울고 자주 의식적으로 큰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담담하게, 한편으로는 그 시기의 나를 안쓰럽게 여기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지금은 어느 정도는 삶의 절망스러운 부분을 받아들여야 함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감으로써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안다. 그 시기의 내게 내가 어떤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냐는 상담사님의 말에 나는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대답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왜 고기를 안 먹어?”
“비건이야?” 또는 “베지테리언이야?”
“먹고 싶을 때는 어떻게 참아?”
“그러면 내가 앞에서 고기를 먹으면 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여?”
(해산물은 먹는다는 말에) “그러면 물고기는 안 불쌍해?”
(몸 컨디션이 안 좋다는 말에) “고기 안 먹어서 그런 거 아니야?”
23년 2월 이후로 고기를 먹지 않은지 이제 2년이 좀 넘어간다. - 정확하게 말하지만 나는 덩어리진 육류를 더 이상 씹어 삼키지 않는다. 너무 진하지 않은 육수나 육류 성분이 첨가된 조미료로 만들어진 음식은 상황에 따라서 먹는다. 그러니 나는 엄연히 따지면 비건, 베지테리언은 아니고 그냥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으로 나 자신을 정의한다. 굳이 정의까지 내려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긴 하지만. - 지난 시간 동안 나에 대해 소개하거나,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메뉴를 정해야 할 때 나의 식습관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마치 어떤 비밀스러운 정체가 탄로난 것처럼 단순 궁금증이 어린 시선이든, 아니면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 때로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나의 이유와 이어지는 나의 모순들에 대한 질문들이 따라왔다. 외국은 조금 더 채식에 열려있다고 하니까, 그리고 이곳에서는 어떤 식당에 가도 거의 대부분 베지테리언 옵션을 가지고 있으니까 질문을 덜 들으려나 했는데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종종 같은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멋쩍어하면서 최대한 간소화된 대답 ‘돼지를 잔인하게 죽이는 영상을 봤다’ 하며 대답을 마무리하지만 내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이유는, 너무 추상적이라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꺼낼 수 없었던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나의 음식에서 고기를 빼는 것쯤은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서 한다. 어떤 우월감이나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그냥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을 한다.
세상을 살아가고 받아들이고 사랑하다 보면, 그래서 다음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면 조금 더 이 세상이 괜찮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하지만 그렇게 사랑으로 시작된 시선은 어떤 곳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비극을, 다른 종에 대한 무자비한 살생을, 나 또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그에 대한 인간의 무심함을 목격하게 된다. 그럴 때면 내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이 감정이 과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이런 세상이, 이 모든 것이 계속 이어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하고 또다시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허무주의로 빠져들게 되는데 그럴 때면 다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곳을 다시 둘러본다. 하늘, 성실함, 애정, 호기심, 초록의 생명, 경이로움 그리고 다정함. 그러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고 기대되는 이 모든 것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는지, 비록 그게 정말 미미하다는 것을 알더라도, 찾아보고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게 지금 나에게는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일 뿐이다.
내가 지금 뉴질랜드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 이유도, 아직 불확실하지만 만약 이곳에서 더 오랜 시간 머물 수 있게 된다고 했을 때 기꺼이 그 시간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도, 한국에서의 삶도 너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돌아가기 주저되는 이유는 어쩌면 이곳이 내가 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것의 다음을 기대하면서, 그것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그렇게 나는 계속 살아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