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 도착한지 1주일도 되지 않았을 때, 주영이의 생일날 저녁에 찾은 홍합 요리 레스토랑에서 우리와 같이 워킹홀리데이를 보내고 계신 서버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일을 시작하고 나면 워킹워킹데이가 될 테니 지금 많이 즐겨두라는 말을 하셨다. 그렇게 두 달 여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분의 말처럼 완전한 워킹워킹데이에 들어섰다.
일이 일상의 대부분이 되어버린 요즘 여기저기에서 일은 어때?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대체로 이 생활에 만족하지만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왈칵 눈물이 나오려고 할 때가 가끔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한 어떤 실수 때문인가 했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니 결국 ‘증명해내고 싶음’에서 터져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낯선 곳에서도 자리를 잡고 잘 살아낼 수 있다는 것, 이곳에서도 내 몫으로 맡겨진 것과 그 이상의 일도 제대로 해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내가 이곳에 완벽히 녹아들 수 있다는 것. 그것들을 나는 스스로에게 꼭 증명해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모든 것들에 있어서 배우는 입장에 놓여있던 스무 살 초반에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프로젝트의 중심에서 여러 클라이언트와 내부 부서들의 조율을 이끄는 PM으로, 새로 합류한 분을 이끌어주는 사수로, 내가 믿고 따랐던 팀장님에게 신뢰를 받는 팀원으로서의 역할을 해왔었기 때문에 그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굳게 다져놓았던 것들을 내려놓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투둑, 투둑, 투둑하고 한 번씩 터져 나오는 부담과 좌절이 난데없이 테이블을 닦다가, 우유 스팀을 하다가, 메뉴판을 보는 손님을 기다리다가 치밀어올라 온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지금 여기서 갑자기 눈 빨개지면 끝이다 라는 생각으로 다행히 참아냈지만.
무언가 다시 배우고, 자리를 만들어가야 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접하고 익힌다는 것에 대한 설렘도 당연히 있다. 한국에서도 카페에서 일해본 적이 있지만 이곳의 카페 문화에서는 커피의 퀄리티가 훨씬 중요하게 여겨지고, 커스텀도 개개인마다 아주 다양하기 때문에 우유를 스팀하는 것부터 다시 배워나가고 있는데 생각보다 더 재밌다. 또 내가 과연 익숙해질 수 있을까 싶었던 단골 커피 오더 외우기도 아직 한정적이긴 하지만 문턱 넘어설 때 만들기 시작해서 이름과 함께 커피 내어주며 안부 묻기를 해내는 나를 발견했을 때의 뿌듯함도 때로는 그날의 마감때까지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가 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 여전히 남아있는 언어 장벽과 커피에 대한 서투름으로 벌어지는 실수들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파장은 그 모든 재미와 뿌듯함이 모래 위의 글씨였던 양 흔적도 남기지 않고 쓸어가기도 한다.
하루는 동료 바리스타가 내게 커피 포지션을 맡긴 날이 있었는데 도켓이 하나 둘이었을 때는 차근차근 해내다가 서서히 도켓이 밀려오기 시작하면서 마음속으로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내가 만들어내는 커피에서 드러났다. 그러던 중에 한 커플의 커피를 만들면서 ‘아 폼이 좀 부족한 거같다..’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괜찮겠지, 다시 만들면 뒤에 주문이 밀릴 텐데,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내가 잘 만들지 못했다는 걸 티 내고 싶지 않은데 하면서 그들에게 내어놓고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뒤에 동료가 도켓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커피를 만들길래 어떤 건지 물어보니까 푸드를 서빙해주며 보니 커피를 쏟았길래 다시 만들어주려고 한다 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는데 그 커피가 문제였을지, 테이블이 흔들렸을지, 실수로 머그를 잡다가 놓쳤을지 그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커피 경력이 많은 동료는 내가 만든 커피가 너무 묽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테고, 손님들이 동료가 만든 커피를 다시 받았을 때 위에 그려진 아트까지 완벽한 커피를 보고 자신들이 그전에 받았던 것과 당연히 비교가 될테고,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그냥 괜찮겠지 덮어두고 싶었던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더 큰 실망감이 느껴졌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내가 배우는 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꺼이 시간을 주고 기다려줬을 텐데, 또는 도움을 줬을 텐데 스스로가 만들어낸 조급함과 부담감에 그 배우고 있는 자에게 허락되는 것들을 져버렸구나, 결국 잘 해내고 있다 증명해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지다 보니 그 마음에 잡아먹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내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내가 지금 잘 해낼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 내가 지금은 커피를 만드는 게 부족해도, 한 번씩 언어장벽에 부딪혀도 그래도 나는 내가 한번 익숙해진 것에서는 빠르게 처리할 수 있고, 진짜 환하게 웃으면서 손님들 대할 수 있어!’ 하면서. 그래도 수많은 좌절 중 다행인 것은 그런 노력이 통했는지 이곳에서 내게 더 많은 기회를 주려고 한다는 점인데 사실 그에 마냥 기쁘기보다는 기회를 얻게 될수록 더 많은 좌절을 직면해야 할 텐데, 더 많이 증명해보이고 싶어질 텐데, 더 복잡한 상황을 해결해나가야 할 텐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며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솟아오를 때가 있다. 하지만 이걸 내가 부딪히고 넘어서야만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그것이 내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늘도 입꼬리를 올리고, 가끔 눈을 부릅뜨면서,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 본다. 내가 배우게 될 것이 단순히 커피만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