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어느 겨울, 여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하던 날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면서 ‘또 폭설이네 버스는 제시간에 오려나’ 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는 내내 어플을 번갈아 보며 버스 배차시간, 지하철 예상 도착시간을 머릿속으로 조합하기 시작했고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튀어나가듯 밖으로 나가 우산을 펼치려는데 옆에 진한 꽃분홍색의 패딩을 걸쳐 입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환한 얼굴로 바라보시는 할머님이 계셨다. 눈을 교통체증과 지각의 원인으로 바라보던 나와는 상반되게 눈을 정말 눈으로 바라보시는 그 눈빛이 마치 눈의 결정처럼 빛난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할머님께서 말을 걸어오셨고 어쩌다 보니 할머님의 핸드폰을 건네받아 눈이 소복이 쌓인 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어드리게 되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버스를 놓친다는 조급함이 있었지만 도저히 그 눈빛을 저버릴 수 없었기에 핸드폰을 가로세로로 돌려가며 사진을 찍어드리고 떠나려는데 핸드폰을 다시 건네받는 할머님께서 ‘내가 어렸을 때 눈을 참 좋아했거든’ 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 가끔 한 번씩 그 겨울의 출근길이 떠오른다. 펑펑 내리는 눈을 창문 너머로 보시고 아무 겉옷이나 걸쳐 입으며 한달음에 나오셨을 할머님 마음이 어땠을지, 오랜 시간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걸 기대하는 마음을 간직한다는 건 무엇일지, 그때의 나의 눈도 그분처럼 빛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요즘 나의 뉴질랜드의 출근길은 항상 기대로 가득 차있다. 일 자체가 재밌는 것도 있지만 나를 기대하게 만드는 건 출근 전에 바라보는 일출이다. 사실 일출을 보게 된 건 순전히 현실적인 우연에서였는데 내가 일하는 곳 근처에는 무료 주차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아주 한정적이고 그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서는 새벽 6시 10분까지 - 원래는 6시 30분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 그곳에 도착해야만 한다. 만약 자리를 얻지 못할 경우 하루에 약 17불, 한국 돈으로 만오천원 정도를 내야 하기 때문에 이제는 잠보다는 절약을 선택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전 날 저녁 점심 도시락과 함께 아침 도시락을 같이 싸고 아침에 주차 자리를 사수한 다음 차 안에서 아침 도시락과 함께 일출을 바라보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하게 된 것도 ‘아침잠 많은 내가 이 꼭두새벽부터 주차 자리 하나 얻어보겠다고 출근을 할 줄이야’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 생활을 한 달 여간 이어가다 보니 많은 날들에 각기 다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 별들이 쏟아질 듯 수놓아진 하늘, 구름이 낀 틈 사이로 붉게 타오르는 하늘, 파스텔톤으로 점점 연보랏빛으로 어둠이 걷히는 하늘, 로맨틱함이 가득했던 핑크빛의 하늘, 온 하늘이 주황색과 붉은색으로 물들었던 카페에 온 손님이 모두 어메이징이라며 입을 모았던 내 인생에 제일 멋있었던 하늘. 어느 순간부터는 차 안에서만 이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는 마음에 바깥 벤치에 앉아서 아침을 먹거나, 부둣가를 따라 산책을 하다가 출근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의 흐름을 서서히 변해가는 하늘에 따라서 느끼기 시작했고, 그런 하늘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과 아침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고, 주영이가 아침에 데려다주는 날에는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내려서 건물의 벽에 비치는 주황빛을 바라보며 저 코너를 돌면 어떤 해가 기다리고 있을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었고, 언제나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해를 마주하기 때문에 입 밖으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었다.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할 때 문득 그때의 할머님의 눈빛이, 얼굴에 번진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는데 요즘 매일 아침 하늘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과 얼굴이 분명 그분을 닮아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무언가 기대에 가득 찬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가장 강렬했던 아침을 레터에 담아보내며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떤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길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