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잎클로버는 행운이고, 세잎클로버는 행복이래’
행운의 상징이라고 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건 네잎클로버였기에 아주 오래전부터 그의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세잎클로버가 행복을 의미한다는 것은 주영이의 말로 처음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이 C는 가끔 정원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는 데에 빠져있곤 하는데, 한번은 같이 풀밭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온통 세잎클로버뿐이라 저려오는 다리와 뻐근해지는 뒷목을 잡고 ‘이걸 찾아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걸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 즈음 C의 기쁨으로 가득 찬 ‘‘포클로버!!!’ 소리가 들려왔고 작은 손에는 네잎클로버가 들려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찾은 클로버를 내게 건네며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을 줄 것도 찾아내겠다는 귀여운 다짐과 함께 그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아이를 보면서 내 손에 넘겨진 네잎클로버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내게 네잎클로버는 ‘이 풀밭에서 찾아내야만 하는 잎이 4개 달린 풀 중에 하나’였고 세잎클로버는 ‘그 잎이 4개 달린 풀을 찾게 힘들게 만드는 흔하다 못해 빼곡한 풀들’이었지만 말이다. 사실 그 순간에도 세잎클로버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시간이 흘러 주영이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 세잎클로버로 가득했던 정원은 그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준 배경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과 휴식을 반복하고 있는 요즘 나의 일상의 주된 배경은 뉴질랜드의 경이로운 대자연에서 북적이는 카페로 바뀌었다. 일을 시작했을 때 이곳의 카페 문화에 빠르게 적응했어야 했는데 그 중에 가장 신기하고 어려웠던 것은 단골손님과 그들을 대하는 바리스타 문화다. 저 멀리 단골이 걸어오는 것만 보고 머그와 일회용컵 중에 무엇을 집어야 하는지, 설탕은 몇 스푼을 넣는지, 우유는 뭘 마시는지, 주문 즉시 만들어줘야 하는지 아니면 그 손님의 친구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등등 여기에 나열하자면 한 장 빼곡하게 적을 수도 있는 단골들의 취향과 상황을 모두 예상하고 움직이기 시작해서 그의 계산과 동시에 커피를 내려놓는 나의 동료들. 그들을 보며 어느 정도 들어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해내야 하다니 하는 놀람, 돈과 커피의 거래 관계를 넘어서 사소한 일상까지 다 알고 있는 이 단골과 바리스타의 친밀함에 대한 놀람, 아이스 아메리카노 거기서 조금 더 추가해봤자 연하게냐 샷 추가냐 정도였던 한국의 커스텀을 넘어서 도켓에 줄줄이 이어지는 커스텀에 대한 놀람, 놀람. 또 놀람. 일을 시작한 첫 번째 주는 놀람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일을 시작한 지 3주 정도가 지났는데 얼마 전에 퇴근하다가 문득 ‘나는 사람운 하나는 끝내준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생활까지도 챙겨줘서 어미 오리처럼 따르고 있는 동료 M은 본인의 주장으로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단골들을 세심하게 살필 줄 알고 내가 벙찔 수도 있는 순간순간에 괜찮냐고 상태 체크를 해주는 세상 다정한 사람이고, 새로 바뀐 오너 J는 매일 나와서 단골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내게 레시피를 알려주겠다며 노트를 꺼내들었을 때 얼마나 들춰봤는지 너덜너덜해진 걸 가지고 다니며 열심히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팀원을 위한 사과주스도 항상 빼놓지 않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고, 또 다른 동료 P는 바쁜 시간대에 우리가 허둥거리지 않도록 메인 롤을 정해주는 리더십을 보이다가도 여유로운 틈에는 와서 약간 웃기 싫지만 피식- 웃게 되는 실없는 장난을 치기도 하는 유쾌한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의 자리에서 몫을 다하면서 서로서로 돕는 T, K, E. 어딜 가나 팀으로 일하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함께하는 사람이 내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곳에서도 동료운이 또 따라준 건지 퇴근길마다 커피 챙겨가라며 손에 쥐여주는 동료들 덕분에 오늘도 놀람의 연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동료들뿐만 아니라 너무 사랑스러운 단골들까지 그들을 이곳에서 만난 게 나의 행운이라고도.
문득 네잎클로버 입장에서는 항상 곁에 있어주는 세잎클로버들 덕분에 자신을 행운이라고 여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존재 자체만으로 행운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행복이 되어주는 존재들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을 행운으로 여기는 네잎클로버. 요즘은 내가 마치 네잎클로버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자주 느낀다. 동시에 누군가의 세잎클로버이기를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