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바닥을 찍고 올라와야 하는 사람이 있다. 얼마 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과 그리고 내가 해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부담이 겹쳐서 또다시 큰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있었다. 보통은 일기를 쓰면서 이 생각과 감정들을 텍스트로 써서 정리를 하거나, 어느 정도 그 감정 속에서 ‘이 또한 지나가겠거니’ 하며, 마치 서퍼들이 큰 파도를 지나가야 할 때 그 파도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처럼 시간을 보내면서 그 시기를 넘기곤 하는데 이번에는 그 방법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마치 파도 속으로 숨을 헙 참고 들어갔는데 ‘어라 아직도 안 지나가네?’ 하며 숨이 점점 차오르는 느낌이었고 현실에서는 숨이 차지 않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차오르는 바람에 책상 위에 휴지더미를 쌓아두는 날이 계속 됐다.
그러다가 문득 나의 고등학교 때가 떠올랐는데 매번 시험이 다가올 때마다 등급에 대한 부담으로 시험 전 날 새벽 엄마 품속에 파고들어가서 내가 시험 못 보면 어떡하냐고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럴 때 자다 깬 엄마는 나를 안아주면서 그렇게 스트레스 받지말고 그냥 자라고 해줬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떻게 내가 그냥 잘 수 있겠냐며 괜히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고 다시 들어가서 책상에 엉덩이를 붙여 날을 새는 것이 어떻게보면 나의 시험 전 날 밤 루틴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다. 무언가 내게 큰 목표가 있을 때 그걸 위해 내가 해내야 할 것들에 대한 막연한 부담, 만약 내가 실패했을 때의 막연한 두려움, 준비하면서도 혹시나 내가 준비하는 방법이 옳지 않거나 비효율적이면 어쩌나 하는 그런 막연한 의심 그 모든 막연함들이 나를 바닥으로 떨어트리지만 그 바닥의 어딘가에 부딪힌 힘을 받고 나는 다시 튀어오르곤 한다. ‘그래서 포기할거야? 아니 어떻게 포기해!’ 하면서.
이번에 내게 메시지를 보내준 친구들 중에 한 친구가 이렇게 무너짐을 내비칠 수 있는 건 사실은 스스로가 자신을 강하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말을 해줬다. 그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내 스스로를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강함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나의 강함은 잔디같은 아무리 밟혀도 결국에는 더 깊게 내린 뿌리로 다시 언제 눌렸었냐는 양 살아나는 그런 질김에 있다.
바닥을 한번 치고 올라온 요즘은 또다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부지런히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나의 일터로 향하고, 사람들과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하루를 보내고, 샤워를 하고 몸에 크림을 바른 다음에, 방 정리정돈을 하고 저녁을 먹고, 오늘의 할당량으로 정해둔 공부를 하고, 요가까지는 못해도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준 뒤에, 잠옷을 겹겹이 입고 잠든다. 보통의 상태로 돌아왔다고 해서 아주 특별한 것을 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동안 살아오던 일상을 조금 더 가볍고 또렷한 마음으로 보낸다.
기어코 바닥을 찍더라도 결국에는 올라오는 사람이 있다.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가끔 그 믿음이 가려질 때 나보다도 나를 믿어주는 소중한 주변인들이 있다는, 이번 바닥에서 내가 다시금 깨달은 것을 한번 더 상기시키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