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대학원 면접이 있었던 날, 마지막으로 관련 자료들을 한 번 더 훑어보고 뉴질랜드 원주민의 언어인 마오리어로 준비한 자기소개도 계속 되뇌며 연습하다 보니 어느덧 면접 시작까지 20분 정도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부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면서 긴장된 마음이 떨리다 못해 흥분되기 시작했는데 그럴 때는 나는 보통 내 스스로에게 말을 걸면서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 그 도전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를 상기시키곤 한다.
‘... 그래도 어쨌든 나는 모든 게 결국에는 다 지나간다는 걸 믿기 때문에 … 이 긴장되는 마음도 결국에는 다 지나간다. 결과가 안 좋으면 슬플 수 있고 좌절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것들도 다 지나갈 거고, 이게 잘 된다고 해서 인생이 그대로 다 잘 풀리게 아니라 그 잘 풀렸던 순간 또한 지나가고 또 다른 과제가 다시 내게 주어질 거다. … 하지만 이렇게 지나가야, 그렇게 흘러가야 나에게 경험이 생기고 그를 토대로 살면서 마주할 수많은 과제들에 계속 부딪힐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다.’
그렇게 그날의 면접을 시작으로 다른 학교 면접, 문해력 수리력 시험, 내 인생에 더는 없을 줄 알았던 아이엘츠까지 나에게 지난 4개월은 이어지는 절차와 준비에 수백 번도 넘게 찾아온 불안, 좌절, 긴장의 연속에서, ‘이 또한 지나간다’ 는 마음으로 조금만 견뎌보자며 나를 수백 번 하고도 한 번 더 일으켜야 했던 시간이었다. 마침내 마지막 조건까지 모두 맞춘 날, 외마디 환호성과 함께 나를 짓누르던 부담감에서의 해방감을 느꼈지만 곧 그다음 절차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또다시 지끈거리는 요 근래 몇 주를 보냈다. ‘이제 다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이게 결말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이제는 너무 잘 알아서 그런 것 같다. 인생에 완전한 결말이라는 것은 없다.
힘들고 지치는 일에 ‘이 또한 지나간다’는 생각은 힘이 되는 생각이지만, 좋고 기쁜 일도 그와 같이 지나가고 또다시 여러 상황들을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힘이 빠지도 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 견뎌야 끝나나요?’라며 희미한 불빛을 따라서 끝없는 동굴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 끝은 결국 한 생이 끝나는 것과 같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걷는 동안 어떤 마음으로 걸어나갈 건지 뿐이라는 것을 지난 시간을 견뎌오며 배웠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필연적인 고통의 연속인 삶을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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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대학원 면접은 100km를 달려 옆 도시로 갔어야 했는데 그곳을 잘 모르다 보니 학교 근처의 주차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두고 30분 거리를 걸어서 면접을 보고 왔다. 모두가 나와 같은 아시안이었고 화상으로 진행되었던 지난번과는 다르게,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 함께 그룹 과제까지 수행해야 했던 이번 면접을 마치고 터덜터덜, 하지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으니 결과를 기다리며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자’는 마음에 무겁진 않은 발걸음으로 다시 차로 향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면서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며 우리 안에 새로운 아이가 계속 태어나고 자라는 것 같다고. 운전하는 아이는 뉴질랜드에서 쑥쑥 자라 이제는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200km를 혼자 운전하는 아이가 되었고,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겠다는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이렇게 면접도 보고 오더라고. 그러면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수많은 도전 속에서 태어난 그 수많은 아이들의 집합체가 되어가는 게 아닐지, 그런 아이들을 스스로 대견하게 여겨주는 것이 아이들의 집합체이자 자기 자신인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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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필요한 절차를 진행시키고, 마음을 정하고 나자 이제서야 잠시 한숨을 돌리며 지난 시간을 돌아볼 틈이 생겼다. 지난 4개월 동안 쓴 일기장을 다시 쭉 읽어본 뒤 스스로에게 고생 많았다고 대견하다고, 앞으로 정말 쉽지 않겠지만 한번 가보자고 다독이는 일기를 쓰고 나니 마치 힘들게 정상으로 올려둔 돌이 다시 데굴데굴 아래로 굴러가는 걸 보고 있는 시시포스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걸 또 언제 끌어올려 난 못해. 어차피 올려놔봤자 다시 떨어질 텐데 그럼 무슨 의미가 있어. 이 무의미한 반복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게 정말 싫어. 지긋지긋해. (하면서 터덜터덜 아래로 향한다. 돌을 끌어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또는
‘이렇게 될 줄 사실 나는 알았지. 알았지만 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는 거야. 저걸 끌어올리지 않고는 내가 무엇을 할 수가 있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나? 없으니까 그냥 하는 거야. (하면서 터덜터덜 아래로 향한다. 돌을 끌어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시시포스 신화에서 시시포스는 신이 내린 형벌로 돌을 산 정상에 올려야만 한다. 하지만 돌은 계속해서 아래로 다시 굴러떨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영원히 멈출 수 없는 노동에 갇힌 셈이다.
어떤 생각을 하며 다시 돌을 끌어올리러 내려갈지는 전적으로 시시포스에게 달려있다. 그걸 바라보는 시시포스가 느끼는 감정이 과연 허탈함뿐일지 어떤 대견함을 느낄지 그 무엇일지는 오로지 시시포스만이 알 수 있다. 그 시시포스처럼 삶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기에 하루하루를 살아내야만 하는 우리는 그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직면하고 해결하고 - 때로는 좌절하고 - 또다시 직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거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먹기 뿐이라는 진리를 데굴데굴 다시 아래로 굴러가는 나의 돌을 바라보면서 떠올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