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 잘 살아’
누군가가 들으면 마치 나 또는 주영이가 뉴질랜드를 떠나는건가 싶을 수 있는 말을 플랫을 이사하던 날 주영에게 건넸다. 지난 반년동안 서로를 의지하며 동거동락해오던 시기를 지나서 이제 각자의 공간과 생활을 이어나가기로 결정한 날 이후, 새로운 플랫을 알아보고 뷰잉을 다니고 있으니 이제 정말로 홀로서기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삿날 늦은 저녁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던 플랫메이트들과 또 마지막으로 주영이와 한번 와락 안고 새로운 동네에 있는 새로운 플랫을 향해 또 새로운 경로를 따라가는데 그날따라 어두운 뉴질랜드 겨울 밤의 도로가 더 깜깜하게 느껴졌고, 헤드라이트는 그날따라 정말 한치 앞의 길만 비춰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 차에는 나, 네비게이션, 트렁크 가득 싣은 내 짐 그리고 또다른 챕터로 넘어간다는 설렘 아래에 낮게 깔린 적막함이 있고.
뉴질랜드에서 차를 산 그 날 우리는 바로 200km를 넘게 달려 타우랑가로 향했다. 우리의 첫 장거리 운전이었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며 노래조차 틀지 못한 차 안에는 몇시간 내내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적어도 적막함은 없었다. 누가 운전하는지와 상관없이 조수석에 있는 사람도 함께 길을 보았고, 도로 사방으로 뉴질랜드의 대자연이 펼쳐지는 순간에는 - 목적지로 향하는 대부분, 사실 모든 길이 그랬다 - 함께 외마디의 감탄사를 내뱉었고, 거대하다 못해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위협감이 느껴지는 화물차를 발견할 때는 같이 쪼그라들기도 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내내 나란히 앉아 해가 져서 아주 깜깜한 구불구불 산길을 지났어야 하는 순간에도 겁먹지 않고 운전대를 고쳐잡으며 예약해두었던 비앤비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새 플랫으로 가는 동안 그때가 문득 떠올랐는데 이제는 나란히 앉은 주영이가 없다고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다시 나려고 했지만 ‘운전 중이야 정신차려!’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려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 곳에 도착했다.
인생에서 내게 힘이 되어준 사람들, 나와 좋은 추억을 함께 만들어가던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라면 어떨까? 나는 그들로부터 살아갈 힘을 계속 받을거고, 심심할 때마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킥킥거리며 웃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내 인생의 사람들은 인생의 초기에 형성된 ‘그들’의 무리로만 한정되지 않을까 싶다. 학창시절에 나는 항상 새로운 반 편성표를 받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던 학생이었는데 그건 한 학년동안 잘 지내오던 친구들과 떨어져야 한다는 슬픔, 또다른 반에서 내가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친구를 사귀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노력을 해야한다는 막연함에서 나온 눈물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헤어짐은 너무나 아쉽지만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을 기억하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 그게 자연스러운 인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그들’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게 되고, 그들과 함께한 나의 시간들은 더 다채로워지는게 아닌가.
이젠 매일 오늘도 고생했어 인사는 할 수 없지만 어제도 만나서 커피 한 잔한 주영, 우리의 첫 플랫메이트가 되어주었던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엄마와 딸인 H와 C, 얼마 전에 유럽여행을 위해 마지막 인사를 해야했던 카페 동료 A, 이곳에서 만난 수많은 친절했던 사람들, 한국에 있는 나의 친구들, 동료들 그리고 가족들. 내 인생을 함께 해주었던 보고싶은 그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며 이 글을 빌어 안부를 전해본다. 다들 잘 살고 계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