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담다 사장님 부부를 처음 만나게 된 건 지금 일하는 카페에서였다. 그날은 내가 틸을 보고 있던 날이었는데 한 다정해 보이는 커플이 캐비넷 앞에서 무엇을 먹을지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우연히 들려왔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언어도 사람도 문화도 모든 것이 다 낯선 것으로 가득 찼던 시기였는데 그때 들려온 한국어가 괜히 더 반가운 마음에 환하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네며 주문을 받고 가볍게 대화도 나눴다. 이곳에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사는지 왠지 내 얼굴이 익숙하다, 여기서 오래 살았냐는 사장님 말씀에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농담도 하면서 ‘오늘 처음 본 손님이지만 되게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라고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사장님 부부도 주문한 음식을 다 드시고 떠나고 나도 한창 다시 일하고 있는데 내 친구 주영이가 담다에서 일한다는 걸 아는 동료가 아까 그 한국인 커플이 담다 오너라고, 여기 카페 단골이라서 자주 온다는 말을 해줬다. 주영이에게 일하는 식당 사장님들에 대해 들었었는데 그분들이 아까 그분들이었다니!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사장님들이 나까지 회식자리에 매번 초대해 주시고, 나도 담다로 한식을 먹으러 가고, 카페에서도 자주 만나며 쭉 이어져 어느덧 알고 지낸지 4개월 정도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인스타그램을 서로 팔로우하게 되어 피드에서 사장님들이 가게를 처음 오픈하시던 날들, 이곳에서의 생활들 등등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 몇 년 전 이 지역의 한 학교에서 음식을 나눠주는 봉사를 시작하신 날의 글을 발견했다. 나눔의 즐거움을 느낀 첫 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남기셨을 글과 사진 속에는 오래전부터 소망해왔던 순간을 실현시킨 이들의 벅참, 감사함 그리고 다정한 온기가 담겨있었고 맛있는 음식을 둘러앉아 먹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순수한 기쁨이 가득했다. 그리고 며칠 전 주영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연히 사장님들이 내일 휴무 때 학교로 치킨 봉사를 가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내가 봤던 피드가 생각나면서 아직 그걸 이어오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왠지 모르게 그 순간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장님께 메시지를 드려 혹시 내일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지 조심스레 여쭤봤는데 너무나 흔쾌히 함께 가자고 해주셔서 다음 날 주영이와 함께 학교로 향했다.
사장님들이 좋아하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들고 학교로 가는 길에 어떤 마음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었는데 이게 과연 어떤 마음인지 그 순간에는 적확한 표현을 떠올릴 수가 없어서 주영이에게 ‘이 마음이 뭐지? 주영아 이게 뭘까?’ 한창을 물었는데 왠지 이 봉사가 끝난 뒤에야 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떤 마음으로 가득 채워진 상태로 도착한 학교에서는 아침부터 말썽을 부린 튀김기로 촉박해진 점심시간에 분주한 사장님들을 도와서 서둘러 준비를 시작했고 ‘치킨을 받은 아이들에게 소스를 짜줘라’ 라는 미션을 받은 나는 한 손에 케찹, 한 손에 마요네즈를 들고 아이들을 맞이했다. 체감상 3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을 맞이했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들뜬 개구진 얼굴, 신나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사람들에 수줍은 얼굴, 케찹 or 마요네즈라는 나의 말에 혹시 둘 다 받을 수 있냐고 묻는 정중한 얼굴, 이 나눔에 감사함을 담아 인사를 끝까지 전하는 환한 얼굴 등등. 그 얼굴들이 이미 가득 부푼 내 마음에 바람을 불어 봉사가 끝났을 때에는 마음이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떠오른 것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뒷정리를 끝내고 주차장에서 인사를 나누는 사장님들의 얼굴에서도 힘듦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그들의 얼굴에 피어난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일주일에 단 한 번 있는 가게 휴무일에는 그동안 고되게 일해서 지친 몸을 뉘여서 더 자거나,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아무리 한 달에 한 번이라고 해도 그 오랜 시간 동안 빠짐없이 이렇게 아침부터 일찍 나와 아이들에게 줄 음식을 준비하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 많은 음식을 나눠주고, 이 아이들과의 약속을 앞으로도 지켜나갈 거라 다짐하는 그들을 보고 있으니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또 무엇이 우리를 여기로 이끌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짐작을 해보자면 그 이유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순전히 혼자의 힘으로만 얻어지게 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가족으로 친구로 어떤 관계로 정의되는 사이가 아니라 할지라도 한 사회와 세계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모두가 어느 정도는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뉴질랜드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 잠시 멈췄던 아동 후원을 다시 시작했는데 그것도 이와 같은 마음에서였다. 뉴질랜드로 떠나는 나의 마음가짐은 조금 더 내 삶을 내가 추구하는 방향대로 이끌어가겠다는 마음이었고, 그중에 하나는 이 연결감을 잃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내가 이곳에서 앞으로 어떤 일을, 얼마 만에 시작하고, 얼마를 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이것만큼은 내가 지켜내겠다는 의지로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 끝에 아까 학교에서의 마음이 무엇이었을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같은 마음을 공유하는 이들을 발견한 반가움, 그들을 향한 애정과 응원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마주친 수많은 얼굴들 중에 하나는 그 얼굴을 하고 이 연결고리를 이어나갈지도 모른다는 그런 희망까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