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항상 차로 다니던 거리를 걸어서 좋아하는 동네 빵집에 갔다. 차 안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길거리의 냄새, 햇빛 그리고 산책하는 사람들과의 아침 인사까지 항상 그곳에 있었을 테지만 바쁘게 쌩쌩 지나가느라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늘 카페로 향했던 이유는 어느덧 뉴질랜드에 온 지 4개월하고도 반이 흘러간 지금,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던 시간을 지나서 이제는 이곳에서의 일상과 중심이 생겨버린 요즘을 찬찬히 돌아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제는 나의 단골 메뉴가 되어버린 플랫화이트와 초콜렛 트위스트를 시켜두고 그동안 뉴질랜드에서 적었던 일기를 훑어보듯이 읽는데 시간에 따라 조금 더 평탄하게 변하는 감정의 굴곡들과 또 일기를 쓰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일을 시작하고 적응기를 거친 이후부터는 오히려 모든 것들이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무언가를 고민하고, 복잡한 마음을 글로 써서 내려놓고, 스스로를 다시 한번 일으키는 시간이 줄어든 거다. 카페에서 단골들과 안부를 물을 때도 초반에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요즘 너무 즐겁고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대답을 하곤 했는데 요즘은 그들과 같은 얼굴을 하고 ‘그냥 뭐 똑같이 일하는 하루지’ 하면서 데이오프는 계획이 있는지, 일이 많이 바쁜지 등등을 묻고는 서로의 남은 하루를 응원하면서 대화를 마치고는 한다. 워킹홀리데이 초반 일기에 따르면 그렇게 내가 원하던 열심히 일하고 이곳의 일상에 녹아드는 생활이 지금 찾아온 건데, 이 안정적인 생활이 좋지만 한편으로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안정적이라 불안하고 이 권태로움 마저 느껴지는 듯한 이 기분을 알 수 없는 시기가 딱 4개월이 넘어가는 지금 찾아왔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불안을 잠재우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법’에 대한 김주환 교수 인터뷰 영상을 봤다. 에어팟을 귀에 꽂고 방 정리를 하면서 듣는데 1시간 정도 되는 영상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아 나도 모르게 끄덕이며 ‘아~’, ‘오~’ 하는 소리를 내고 한 번씩 하하 하고 웃기도 했는데 그래서 주영이는 내가 누군가와 오래 통화를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들 중에 하나 크게 공감이 갔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자란 우리들은 무언가를 목표로 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 다음, 이뤄내기까지에는 익숙한데 그것에 만족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낯설어한다는 이야기였다. 일궈낸 지금에 대해서 만족감을 느끼기보다 일단 무언갈 이뤄내고 나서는 바로 그다음 목표를 설정하고 다시 그것을 위해 달려가는 것에 우리는 더 익숙하다고. 생각해 보면 나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만족감을 느끼기도 전에 ‘그래서 이제 뭐 해야 돼’ 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기에 더 바빴던 것 같다. 더 이뤄내야 돼, 더 증명해 내야 돼, 이 시기의 내가 해내야 하는 것,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 쏟아지는 할 일들의 굴레. ‘안주(安住)하다’ 의 사전적 정의는 ¹ 한곳에 자리를 잡고 편안히 살다. ² 현재의 상황이나 처지에 만족하다. 로 인간이 참으로 삶에서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이 굴레 안에서는 안주하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하며 바쁘게 몸을 움직이곤 했다. 때로는 그때의 편안함을 미처 다 누리지 못한 채로, 느낄 수 있었던 충만한 기쁨을 뒤로 한 채.
반면에 가끔 내가 이뤄낸 것에 대해 스스로 만족감을 크게 느낀 경우에는 그 기분이 아직까지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예를 들어보자면 나는 춤이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춤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다시 생각해 보면 미쳤었나 싶을 정도로 혼자서 새벽연습을 하고, 영상을 찍어 올리고, 조금 민망하지만 그 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면서 뿌듯해하던 기억들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지금 서른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보니 삶을 돌이켜봤을 때 결국에는 선명하게 남아있는 좋은 기억들, 강렬한 기분들이 나의 인생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다시 지금 나의 기분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때, 사실 이 기분은 권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분명히 이 생활에 싫증이 나거나, 나른해지거나, 게을러지고 싶은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지겹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내는 우리의 얼굴이, 바쁜 상황에서도 서로의 안녕을 바라며 건네는 인삿말들이, 하루하루 라떼아트 성장을 만들어내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9번 실패하고 1번 성공했을 때 스스로에게 ‘잘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순간이, 그 순간을 함께 기다리다가 옆에서 하이파이브 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쉬는 날에는 300년도 더 된 것 같은 나무들이 우거진 숲을 찾아가서 들이쉬는 그 큰 숨이 지금 나의 삶을 가득 채워주고 있다는 것을 안다. 다만 이 안정적인 생활이 나를 가득 채우다 보니 습관처럼 ‘안주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온 거다. 사실 저 말을 말 자체가 틀렸다 안주하는 상황은 우리를 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안주하지 못하고 계속 실체 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휘둘리는 상황이 결국에 우리를 망친다.
일터에서 자리를 잡고 조금 더 이곳에서의 독립을 준비하고 있는 요즘, 여러 현실적인 걱정들과 추상적인 불안들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이 글을 써내려가면서 그 모든 것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은 결국 지금에 안주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리고 그것을 불안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치 잔디처럼, 한번 깊게 뿌리를 내린 다음에는 그곳을 온통 잔디밭으로 만들어 자기의 세상을 넓히고 아무리 밟히고 비를 맞아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처럼, 지금 내가 이 생활로부터 느끼는 충만한 만족감을 온전히 느끼고 거기에 얻은 힘으로 더 살아갈 의지를 다져보면서 앞으로 뉴질랜드에서의 시간을 살아가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