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nderlogue
언젠가 우리의 기억 속 바다가 될 뉴질랜드에서의 기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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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your Wonder, With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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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서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덕분에, 마냥 웃음으로만 모든 걸 해결하던 내가 손님과 영어로 짧은 스몰 토크를 하고, 마트에서 무조건 “It’s okay”를 외치며 양손에 꾸역꾸역 물건을 들고 오지 않고 이제는 봉지를 줄 수 있는지, 돈을 내야 하는지, 내가 필요한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겪을 때면 이해하지 못하고 “Pardon?”, “Can you say again?”만 연신 반복하는 나를 보며 답답해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다시 자신감을 잃곤 했다. 잠시 풀이 죽어 있다가도 생각해 보면, ‘나도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로 말하면 TED 강연자처럼 말할 수 있다고!’ 라고 마음을 위로하는 요즘, 뜬금없이 ‘부국어’가 아닌 ‘모국어’인 이유에 대해 고민해봤다. 아마, 모국어란 말은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나에게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말로 배우기도 전, 엄마의 심장 소리와 함께 흘러온 이야기. 엄마가 나를 품고 말을 걸어준 시간들. 그 말들은 생명이 되기 위한 준비처럼 나의 안에 깊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래서 모국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나의 뿌리고, 내가 생각이라는 가지를 뻗을 수 있게 해준 토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9살, 내가 뉴질랜드로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기 위해 도전한 나이에 엄마는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날개를 새 생명의 지지대가 되기 위해 기꺼이 접고 땅에 머물러 주기로 했다. 그저 내 삶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찰 나이에, 내 이름 석자 대신 ‘엄마’라는 이름으로 짊어진 무게는 어쩌면 한 번도 제대로 펼쳐본 적 없는, 그러나 나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준 날개와 같았다. 하늘을 날려는 나를 보며, 엄마는 나를 통해 자신이 못 간 곳으로 가길 바라기보다 그저 내가 더 높이, 더 멀리, 그리고 그 길이 안녕하고 행복할 수 있기만을 바라곤 한다. 내가 한 희생에 대한 보답을 바라기보다 더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 그 마음을 나는 감히 헤아려 볼 수 없다. 모국어 처럼 항상 내 안에 있어 당연히 여긴 기꺼운 마음에게 항상 듣기만 했던 그 말을, 노래를 통해서라도 전해지길 바라며…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 이제는 짐을 벗고 행복해지길
나는 간절하게 소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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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로 오기 전에 엄마랑 둘이서 야밤의 맥주 번개를 즐겼던 날이 있다. 그날은 일을 끝내고 몸이 고되긴 했지만 하루를 이대로 마무리하기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 버스에서 내려 엄마의 작업실로 향했고 마침 둘 다 출출함을 느끼던 타이밍이어서 맥주 한잔할까? 하며 호프집으로 향했다. 근처 저녁 예식이 끝나고 우르르 몰려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몇몇 가족 단위의 손님들까지 가득했던 그곳에서 우리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고 나뿐만 아니라 엄마도 오랜만에 느끼는 시끌벅적한 저녁 분위기에 한껏 취해있었다. 생맥주와 갖가지 안주를 앞에 두고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웃고, 또 갑자기 속얘기를 꺼내며 훌쩍이기까지 하면서 엄마와 어느덧 다 커버린 딸의 시간을 보냈다. 한껏 달아오른 기분으로 포토부스에 들려 유치한 인형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고, 엄마가 좋아하는 연핑크색 프레임으로 귀엽게 프린트된 사진을 손에 들고, 아무도 없는 밤길을 폴짝폴짝 뛰면서 집으로 오는 길에 횡단보도를 위에서 나는 신이 날 대로 나버린, 나의 엄마로서가 아닌 그녀의 환하게 웃는 얼굴을 봤다. 또 그녀의 꺄르르 웃음소리를 들었다.
엄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몇몇 그녀의 표정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조건 YES를 외칠 것 같은 입꼬리를 올려 살짝 벌어진 입을 한 상기된 표정이다. 주로 어떤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마주했을 때,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들었을 때, 아니면 그날 밤처럼 정말로 기분이 좋을 때 숨길 수 없이 얼굴에 드러나는 솔직하게 행복한 그 표정. 그리고 나는 뉴질랜드에서 지내면서 내가 지금 그녀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아침마다 샌드위치를 만들며 오너, 셰프와 시시콜콜하게 나누는 장난, 단골손님의 휴가 사진을 보면서 그곳에서의 에피소드를 전해 들으며 나누는 대화, 오랜만에 드라이브를 나가서 만난 풍경, 그냥 이곳의 일상생활 중에 정말 사소하게 마주치는 흥미로운 것들을 나는 그녀의 그 표정을 짓고 마주한다.
엄마와 딸의 관계라는 게 이렇게 표정으로도 이어져있구나 끈끈함을 느끼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녀도 이곳에 있다면 이 표정을 하고 살아가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뉴질랜드에는 그녀가 좋아할 것들이 참 많다. 그녀가 좋아하는 식물, 정원, 대자연, 마당이 있는 주택이 보편적인 거주형태, 동네를 알록달록하게 물들게 하는 자연의 색감. 그래서 뉴질랜드에 오고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니던 때에 엄마를 자주 떠올렸고 그럴 때마다 영상통화를 걸고 사진을 보내며 엄마도 이곳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요즘은 자연보다는 사람과 커피가 더 가까운 일상이기에 - 변명을 해보자면 - 자주 연락을 남기지 않지만 혹시나 이 글을 보는 엄마가 그런 나를 걱정하고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당신의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그러니 걱정 말라고, 한편으로는 혼자서만 이 모든 것을 누리고 있어서 조금 미안하기까지 하다고.
엄마 알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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