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nderlogue
언젠가 우리의 기억 속 바다가 될 뉴질랜드에서의 기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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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your Wonder, Wit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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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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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정말 멋있어. 하던 일 그만둔 것도 새로운 나라에 온 것도 대단한 선택이야.” 최근 미래에 대한 고민만 하며 행동하지 않는 나를 자책하고 있을 때 해맑게 웃으며 남자친구가 툭 던진 힘이 되는 한마디였다. 이번 주제인 원동력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온 나의 대답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진짜 멋있어서가 아니라, 나는 그만둘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멈출 수 있었던 거야”
원동력이라는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단어가 주는 느낌은 강한 추진력, 열정, 혹은 어떤 ‘큰 계기’ 같은 걸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나를 진짜 앞으로 나아가게 한 건, 오히려 ‘멈춤’이었다. 미친 듯이 일을 향해 달리다 퇴직이라는 큰 변화를 선택했을 때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정체되어 있는게 아닐까? 더 나아가 뒤쳐지는게 아닐까? 라는 작은 불안함이 싹틀때도 많았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누구도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조용히 앉아 말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뜻한 커피를 건네주고, 괜찮다고, 충분히 잘해왔다고 말해주었다. 그 따뜻함 속에서 나는 조용히 충전되었고, 언젠가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끌지 않아도 스스로 다시 걷고 싶어졌다. 그 시작은 화려한 도약은 아니었지만 주저앉았던 내게 주어진 고요하고 따뜻한 시간, 그 속에서 다시 피어난 내 에너지가 나를 이끌고 여기에 데려왔다. 나는 언제든 일어날수 있기에 언제든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지니 오히려 조금만 더 걸어 볼까? 라고 나를 움직인 것이다.
러닝을 시작하면서 여행을 갈때마다 읽으며 속도가 아닌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준 무라카미 작가의 에세이 속 가장 좋아하는 문장과 함께 이 책을 추천하려 한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할 수 있다.” 고통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현실이라면, 그 안에서 그저 실패했다며 괴로워할 것인지, 아니면 넘어짐조차 충전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며 나의 팔을 잡아주고 치료해주고 물한잔 건내주는 사람들의 응원과 함께 언젠가 일어날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재 정비하는 시간이 될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멈춤 속에서 고요한 평안함과 따듯함을, 그리고 언젠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스스로를 믿을 수 있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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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5월 11일은 뉴질랜드의 Mother’s day였다. 날이 날이니 만큼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려는 이들이 많을 거라, 더군다나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바쁜 일상으로 제대로 챙기지 못한 가족 식사를 위해 카페를 찾는 이들이 많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손님으로 카페는 하루 종일 붐볐다. 그날 하루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기로 모두가 마음먹었는지 쏟아지는 오더에 커피, 캐비넷, 특히 키친 모든 파트가 정신없이 음식을 만들고 서빙하기에 바빴고 그 속도만큼 컵, 접시, 커트러리 설거짓거리도 무서운 속도로 쌓여갔다. 프론트와 키친을 오가며 아무리 해도 해도 줄어들지 않는 해야 할 일들에 헛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요 근래 이상할 정도로 한가한 날들이 많았던 카페였기에 이런 날도 있어야지 오히려 우리에게 잘 됐다며 팀 모두가 아드레날린을 내뿜으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한창 설거지를 하고 깨끗한 그릇을 가지고 나오는데 무슨 일인지 자기 세상이 다 무너진 듯 엉엉 우는 아이와 난감한 듯 아이를 달래는 부모가 있었고 알고 보니 기다리는 동안 아빠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파란색 장난감 자동차를 캐비넷 앞 좁은 틈 사이로 떨어트렸다고 했다. 이 나이대의 아이에게는 세상의 전부일 장난감 자동차이기에 일단 무조건 구해주겠다며 아이를 진정시켰지만 캐비넷은 너무 크고 무거워서 꿈쩍도 하지 않았고, 그 틈은 너무 좁아서 손을 밀어 넣을 수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막대기 끝에 테이프를 감아 빼보려던 시도는 그나마 빼꼼 보이던 자동차를 오히려 더 깊숙이 들어가게 만들었고 그 순간 ‘제대로 잘못되었다’ 하고 멈칫하는 나와 엄마의 분위기를 느낀 건지 아이의 눈이 일그러지면서 또다시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무조건 꺼내야만 끝난다는 생각에 거의 바닥에 납작 엎드려 보이지도 않는 캐비넷 아래를 간절한 마음으로 한창 막대기를 휘젓던 중 정말 토이스토리 영화 한 장면처럼 먼지 덩어리와 함께 장난감 자동차가 쓩- 밀려나왔다. 손가락 두 개 정도의 크기에 군데군데 빨간색 장식이 들어간 그냥 파란 자동차 아니고 무려 파란 스포츠카. 울만하다.
자기 세상을 다시 되찾은 아이는 그제야 처음 보는 이에 대한 낯가림이 돌아온 건지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 하지 하고 묻는 부모님의 뒤로 계속 숨었고,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담은 얼굴로 대신 감사를 전하는 그들에게 괜찮다고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을 남기고는 나도 다시 바쁘게 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여전히 설거지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밖에서 누군가를 찾는 소리가 들려서 몸을 기울여 프론트쪽을 보는데 그 아이와 가족이었다. 나를 발견하고 내 쪽으로 향해오는 부모님의 뒤에서 아까 그 아이가 나왔고 이번에는 손에 장난감 자동차 대신 빨간 포장지에 싸인 작은 화분이 들려있었다. 여전히 수줍은 얼굴을 하고 내게 화분, 들릴 듯 말 듯 한 땡큐 그리고 목소리보다 컸던 하이파이브를 건네고 다시 떠난 그 가족이 내게 남긴 건 ‘그래 인생은 살만한 거였다’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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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을 때도 뉴질랜드에서의 지금도, 나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버겁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살아가기 위해서 착실히 아침마다 눈을 뜨며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하고, 해가 갈수록 ‘지겨워’ 라는 말을 입에 달게 되고, 정답이 없는 선택을 내려야 하고, 그에 책임을 지고, 관계를 맺고 이어가고 때로는 헤어짐을 견디고. 그래서 어쨌든 고통을 느끼게 되어있는 이 삶을 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는지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을 하고 터벅터벅 걸으며 여러 번 되물을 때가 있다. 왜 살아야 하지?.
그러다 보면 ‘왜긴 왜야’ 하면서 마치 그 쉬운 걸 뭘 그렇게 무겁게 생각하고 있냐는 듯한 표정을 하고 이런 순간들이 한 번씩 찾아온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그 순간들이 나를 피식 한 번 더 웃게 하고, 울컥 감동이 차오르게 하고,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함마저 느끼게 하며 마음을 짓눌렀던 버거움을 불어준다. 그렇게 우리는 그 순간을 살려고, 그 순간을 기대하면서, 그 순간으로 채워지며 또 그 순간을 함께하며 계속 살아있기를 포기하지 않고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 같다. 또다시 고통을 느끼겠지만 그 순간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더 마음을 다잡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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