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본 적도 없던 내게 남자친구의 고양이는 낯설고도 묘한 존재였다. 스스로 잘 놀다가도, 남자친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잠들기 전이면 꼭 옆으로 뛰어와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 ‘사랑’이란, 결국 돌려받으려는 마음 없이 기꺼이 주는 것이구나 하고 어렴풋이 느꼈다. 고양이를 바라보는 나의 눈에도 그런 마음이 담겨 있었다. 존재만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 보답을 기대하지 않아도 사랑이 충분하다고 느끼는 감정.
뉴질랜드에 오기 전까지, 내게 사랑은 무거운 것이었다. 받은 만큼 되돌려줘야 한다는 책임감, 준 만큼 받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에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냥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다. 연애 초반, 함께 있지 않을 땐 자꾸만 불안해졌다. 형태가 없는 감정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 났고, 나와 같은 크기의 마음을 상대도 가지고 있는지 헤아리며 혼자 괴로워했다. 그런 내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건, 함께 여행을 다녀온 이후부터 였다. 산 정상의 텐트 안에서, 본인 등이 시려워도 내 쪽에 슬리핑팩을 챙겨주는 모습. 산길에서 넘어지면서도 내 발밑에 돌계단을 만들어주는 걸 보고 나는 더 이상 사랑의 '증거'를 찾지 않게 되었다. 내가 믿는 건 그의 사랑이 아니라,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믿음 자체였다.
사랑은, 결국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다. 상대가 줄 수 있는 건 '신뢰'라는 형태의 바닥일 뿐, 그 위에 무언가를 쌓아가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이기에 모든 걸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알아가'려고 한다. 이해는 경험이 전제되어야 하는 감정이지만 알아가는 일은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가능하다. 서로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마주할 때, 억지로 이해하고 넘기기보다 "나는 너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 이 상황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고민하는 쪽을 택하고 싶다. 사랑을 하기 위해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말. 그 말은, 사랑을 높이 쌓아가기 위한 지지대는 모두 결국 내 안에 있다는 걸 기억하라는 말 아닐까. 마지막으로 최근 재밌게 본 Love on the Spectrum을 추천하려 한다. 거짓 없는 감정으로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하는 이들의 귀엽고 따듯한 모습을 보며 잔잔한 마음 속 호수에 작을 돌을 던져 살랑거리는 설레는 마음을 만나 보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