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했을 때 요즘의 나는 푸르른 바다보다는 웅장한 나무가 떠오른다고 답할 것 같다. 필롯 베이 비치를 따라 줄지어 그곳을 지키고 서서 이들이 아파트먼트라고 부르는 5층짜리 건물보다도 높은 그 나무들. 타우포 호숫가 산책로에 난 아주 굵은 밑동과 뿌리를 가진 나무와 그걸 일부러 피해서 낸 울타리. 블루 스프링스의 투명하게 맑은 물만큼 인상적이었던 거대하게 우뚝 솟은 나무. 해가 넘어가는 시간 집 근처 언덕에 올라가면 저 멀리 능선에 선명하게 보이는 나무의 실루엣. 이들은 때로는 배경으로 물러나있지만, 또 때로는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나무들이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요즘 읽기 시작한 책 크리스타 K. 토마슨의 ‘악마와 함께 춤을’ 에서는 우리가 흔히 ‘부정적’으로 여겨 피하거나, 없애거나,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감정들을 다루면서 그 감정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찾아보고, 그것을 발견한 뒤에 과연 아직도 그 감정을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결국에 우리는 그 감정들을 배제한 채로 살아갈 수 없고 함께 살아가야 함을 이야기한다.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는 구독하고 있는 뉴스레터에서 우연히 읽은 추천 글을 보고였는데 사실 슬픔에 잘 잠기고, 불안감에 잘 압도되고, 취약하고, 열등감에 들끓기도 하는 수많은 그 악마 같은 감정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끌렸다. 은은하게, 때로는 요동치며 어떤 경우에도 이 모든 감정들이 마음에 뿌리가 깊게 박힌 채 거기에 있다. 꽤나 웅장하게.
이곳 카페에서 일을 시작한 기점으로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챕터 2가 시작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챕터 1은 처음 도착해서 차, 집, 일을 구하며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파악해보는 정착의 단계였고 챕터 2는 내가 이곳에 목표하고 왔던 대로 이곳의 일상에 녹아드는 적응의 단계. 100여 일이 지난 지금은 챕터 2.5 정도에 들어선 것 같다. 일이 손에 익고, 이곳의 언어가 익숙해져가고, 팀과의 합도 서로 간의 신뢰도 잘 맞췄고, 반갑게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는 단골이 생기고, 새로운 관계도 만들어가고, 오프 때는 오히려 이곳의 삶이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일부러 자연을 보러 나가려 하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워킹’홀리’데이 중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이 챕터들을 지나면서 당연히 새로운 삶에 설렜고, 처음 겪어보는 것들에 흥분되었고, 하나하나 낯선 곳에 내 자리를 닦아가는 것에 쾌감을 느끼면서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고, 이것이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며 꽤나 많은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이 ‘긍정적’인 감정보다도 더 복잡하고 역동적인 건 그와 동시에 있었던 다른 감정들이었다. 나의 의지와 계획과는 상관없이 상황에 따라 더 좌지우지되기 쉬워지는 입장으로서의 서러움과 불안함,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다 알 수가 없어서 느끼는 답답함, 갑자기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단절감 그 외에 초라함, 자괴감, 권태로움.
그리고 최근 크게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의심과 외로움이었다. 작년에 프로젝트 아마와 함께 올렸던 뮤지컬 웨이포델포이의 한 장면처럼 ‘할 수 있을까? 내가? 혼자서? 나 혼자서? 할 수 있나?’가 끊임없이 머릿속에 맴돌았고 아직 그 소용돌이 속에 있다. 마치 그동안 새로운 풍경과 환경에 감탄하고 적응하기 위해 미처 뒤돌아보지 못했던 곳에 알고 보니 아주 아주 거대한 기둥의 나무가 원래부터 있었고 그 아래에 무력하게 올려다보는 내가 있는 것 같다.
‘타지에서 내가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나무가 새로 생겨난 것도, 내가 잘라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또 이런 나무가 한 그루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울창한 숲에 들어와있는 상태가 사실은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아가는 걸음걸음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도 다 안다. - 여전히 달갑지는 않지만 -. 자연스러운 단계에는 그만큼 자연스러운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이 긍정으로 여겨지건 부정으로 여겨지건 결국에는 감정의 이유를 파고들어가다 보면 그 뿌리 끝에는 그저 잘 살아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받아들여주면서, 당장은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내일로 그다음 날로 하루하루 넘어간다. 다음의 자연스러움으로 자연스럽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