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문서로 증명해 보였다. 태어난 김에 사는 인생이 아니라, 왜 내가 이곳에 머물어야 하는지, 왜 이 나라에서 살아도 되는 사람인지 설명하는 일. 내 나라를 떠나 살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었다. 몇 장의 서류, 몇 줄의 문장. 그 안에 나의 의지와 계획, 관계와 삶의 방향을 눌러 담았다. 이 문서 하나로 나는 계속 이곳에 머물 수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스트레스였다. 존재가 허락받아야 하는 상태가 이렇게 낯설고 불안한 일이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한국에 있을 때도 나는 단 한 번도 ‘아무 증명 없이’ 머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는 내가 얼마나 유쾌하고 인기 있는 아이인지 친구들에게 증명해야 했고, 고등학생 때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사람 성적으로 증명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누가 들어도 알 만한 회사에 갈 수 있는지, 직장인이 된 후에는 내가 얼마의 연봉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숫자와 비교로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며 살아왔다. 그땐 몰랐다. 그 모든 순간들이 다 ‘증명’이었다는 걸.
그래서 뉴질랜드에서의 이 선택이 짧다면 짧은 1년 만에 너무 큰 결정을 해버린 건 아닐까, 굳이 이방인이 되어 이런 불안을 겪어야 했을까 스스로에게 수없이 묻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살아오면서,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었던 순간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답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곳에서의 증명이 억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어디에 있든 나를 증명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 연장선 위에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바꿨다. 그래 이번에도 증명해 보자.
앞으로도 수많은 시간들을 나를 증명하기 위해 쓰겠지만 이젠 사람들의 기준이나 행정적인 조건이 아니라,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길 수 있는 기준으로 나를 증명해 보고 싶다.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얼마를 버는지보다 어떤 삶을 선택하고,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나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한다.
요즘은 대중교통을 타지 않게 되면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대신 집에서 요리를 할 때, 와인을 한 잔 따를 때, 조용히 청소를 할 때 자연스럽게 음악을 틀어둔다. 그중 요즘 가장 자주 듣는 노래는 Billy Joel의 〈The Stranger〉. 낯선 타지에서, 여전히 나 자신도 완전히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지금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노래 가사로 되뇌어 본다..
“Don’t be afraid to try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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